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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책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리뷰

by 까뮈.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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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아픔도 있다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재밌게도 릴스였다. 난 퇴근하고 남들과 같이 침대에 누워 자기 전 릴스를 보는 편인데, 이 영화가 나오게 되었고 알지못할 우울한 분위기가 나를 매료시켜서 댓글을 뒤져 영화제목을 알아냈다. 하필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아낸 건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절망의 밤이었기에 평일 내내 영화 내용이 궁금했다. 그리고 금요일 퇴근 후 바로 보게 됐다.

 

 난 영화의 줄거리, 예고편조차 찾아보지 않고 온전히 즐기는 걸 선호하는데 영화의 중반부까지 무슨영화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초반 주인공이 배 위에서 친형과 조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여준 이후, 죽지 못해 사는 어딘가 망가진 사람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호감표현도 무시하고 최소한의 감정표현도 하지 않으며 화를 억누르고 있는 표정으로 극도로 폐쇄적인 삶을 산다.

 

주인공의 직업은 좋게 말해 건물관리인이지만 배관도 고치고, 전기도 고치고, 쓰레기 관리, 변기까지 뚫는 잡부중의 잡부. 그리고 지긋지긋해 보이는 건물 세입자들. 주인공은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술집에서 시비를 걸고 싸우는 반사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친형이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형은 이혼한 상태였기에 홀로 남겨진 조카를 돌보며 장례절차를 준비하게 된다. 조카를 사랑하지만 어딘가 부서진 그였기에 티격태격하며 극은 진행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놀라게 되는데, 바로 형이 죽기 전 어떠한 상의도 없이 조카의 후견인을 유언장을 통해 자신으로 지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금전적인 부분까지 상세히 준비해서 말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는 극의 중반 지점 그가 어딘가 부서진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나오게 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는 현재는 과거 고향에서 세아이의 아빠로 남들과 같이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친구들과 술 마시며 노는 웃음 많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친구들과 파티를 한 후 친구들을 보내고 혼자 아쉬운 술을 더 먹기 위해 술을 더 사러 갔지만, 가족들이 춥지 말라고 던져놓은 장작과 함께 벽난로안전망을 쳐놓지 않은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집이 불타버려 세 아이를 모두 잃게 되고 살아남은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다. 그는 그 이후로 완전히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해버리고 고향을 떠나 타인과의 아무런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가혹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가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으며 자신이 끔찍한 실수로 자신의 세 아이를 죽게 만들었지만 스스로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려지지 않는 모습에 넋이 나가며, 그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I can't beat it

 

이 영화는 상처 입은 주인공이 고통을 이겨내고 활짝웃으며 새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판타지적인 영화가 아니다. 지독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고 당시의 상세한 기억, 구급대원들이 구급차에 제대로 아내를 싣지못하는 코미디 같은 장면까지 어찌보면 다큐멘터리처럼 씁쓸한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주인공과 아내 또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주인공은 왜 여기서 살면 안되냐는 조카의 질문에 끔찍한 기억을 남긴 고향에서 있기를 더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러한 뼈아픈 현실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조카가 원했던 대로 영화 후반부 형이 남긴 배의 거의 망가진 모터를 결국 새로 사서 배를 고치게 되고 영화는 초반과 같이 수미상관적으로 둘이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 조카는 '망가진 모터'를 고치기를 강력하게 원하지만 그는 비용과 유지비를 말하며 극구반대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결국 조카의 의견대로 새로운 모터를 구매하게 되고 배는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이는 상처입은 주인공 또한 완전히 치유되진 않았지만 기존의 폐쇄적인 삶을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닌, 조카의 의견대로 고쳐진 배처럼 다시 세상에 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방 두 개짜리를 구할 생각이야, 아니면 소파베드를 사던가.

왜?

너 가끔 오라고

 

 

형은 무너진 그가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가 잃었던 가족을 새롭게 남겨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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