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커뮤니티에 말이 많던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었다.
나는 자기 계발서는 읽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가 거창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은 각자 각기 다른 패를 쥐고 태어나며, 패의 개수 또한 다르고 어떤 사람은 패를 쥘 손조차 주어지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커뮤니티 상에서 많이 바이럴 되어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종이책은 7000원 정도에 e-book은 무료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팔이들은 성공을 호소해서 수익을 얻고 실제로 멍청이들의 돈을 통해 부를 얻어 실제로 성공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인데 무료라니?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싶었다.
책을 쭉 읽어보면 저자는 극도로 가난한 삶을 살다가 수많은 직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업으로 크게 자수성가한 인물로 생각된다. 이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의 신념이 확고하여 자신이 생각하기에 아니다 싶은 것엔 욕설까지 가감 없이 사용한다. 어떠한 일에 대해 깊고 탐구하고 배우려고 하는 학구열이 있으나 대학이 쓸모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면 학벌에 어느 정도 콤플렉스가 있어 보인다. 또한 건강은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과 관련된 것에서 극한으로 공부하라는 것. 단순히 음식점 서빙을 한다고 하면 음식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이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부터 시작해서 납품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단가는 어떻게 되는지, 마진율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무한하게 파고들어 집요하게 공부하란 얘기다. 또한 이러한 피나는 노력의 대가는 천천히 다가오므로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
하 지 만
이 책도 어투가 강력하지만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들이였다.(쓸모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저자는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싶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기에 답답해 보이는 세상에 큰소리를 쳐서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 썼다는 것이다.
추가로 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들도 많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었는데 '사람은 쉽게 죽지 않으니 미친듯이 노력하라'라는 메시지이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왜냐고? 잠도 안 자고 미친 듯이 노력해서 죽거나 크게 건강을 잃은 사람은 이미 땅속에 묻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타고나는 체력은 다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타고난 사람은 끼니를 거르며 컵라면만 먹고 4시간만 자면서 성공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다간 당뇨가 걸리거나, 갑자기 뇌경색이 와서 반신불수가 오거나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극한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정신력과 그를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육체를 가진 아주 특수한 자들이다. 그들은 그것을 물론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러한 의지와 체력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12시간씩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견뎌낼 수 있다. 반면에 하루에 4시간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는 것이다. 결국, 12시간씩 앉아있는 사람도 참을만하니까 버티는 거다.
이러한 자기 계발서의 함정은 지금 이 글의 두 번째 문단에 이미 서술해 놨다.
'사람은 각자 다른 패를 쥐고 태어난다.'
하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를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대학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인상 깊은 글을 본 적이 있다. 대학 등록금을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국가장학금'제도는 소득분위 1~8구간 사이이며 학점이 2.5 이상이면 지급받을 수 있는데, 조금만 노력해도 받을 수 있는 학점이 2.5인데 이런 공부 안 한 애들한테 까지 나랏돈을 지원해줘야 하냐는 글이었다. 추천수는 수백을 넘어갔으며 댓글엔 옹호하는 글도 많았다. 실제로 술 먹고 놀면서 등록금을 받아가는 학생들도 존재하기에 얼핏 보면 맞다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소리다.
그 글쓴이는 아마 양친이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비와 월세를 모두 지원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마치 집 가서 틀면 나오는 따뜻한 온수와 같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열심히 공부해 시험을 치른 후 좋은 성적을 얻고 뿌듯하게 동기들과 간 술집에서 자신에게 안주를 서빙하는 같은 학년의 학생이, 힘든 상황에서 생활비와 월세를 벌기 위해 알바를 밤늦게 까지 하고 힘들어 공부를 많이 못해 성적이 안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어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 글쓴이에게는 학점 2.5는 쉬엄쉬엄 놀면서 잠깐잠깐 집중해도 나올 수 있는 학점이지만 다른 상황의 누군가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결국 이 책도 대단한 사람이 쓴 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능력이 당연한 것인 줄 아는 메타인지가 부족한 부자의 글일 뿐이었다. 특히나 내가 힘든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이들의 조언을 경계하는 부분이 있는데, 일반적인 상황에서 성공한 이들과 다르게 그들은 항상 배수진을 치고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며 인생을 마치 체스게임과 같이 신중하게 선택하여 살아왔고 실제로 성공했기에 자신의 방식이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단한 방법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들은 실제로 자신의 방식을 통해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았기에 그것을 '진리의 경전'처럼 생각한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자들의 말을 이슬람 경전인 쿠란과 같이 믿고 받들어 실제 경전처럼 모시고 행하는 이들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타인의 말을 무조건 수용한다면 결코 범부를 벗어날 수 없으며 자신만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인생의 왕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얻은 감명 깊은 구절!
"
우리는 왜 절망하는 것인가?
미래의 상황을 현재의 처지에 비추어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가난하므로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기를 두들겨 대면서 미래의 삶에 절망적인 번호를 매기고 만다.
지금 상황이 이러하므로 5년, 10년 후 삶도 이러저러할 것이기 이에 희망이 없다고?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모르는데 감히 신의 영역인 미래를 미리 계산하려 하는가.
부자가 되려면 미래 방정식에 지금의 처지를 대입하면 절대 안 된다.
트레인스포팅 게임처럼 우리에게 달려오는 삶의 번호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트레인스포팅 게임 : 영국에서 기차가 생긴 지 얼마 안 지난 시점 기차역 플랫폼에 사람들이 모여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맞히는 게임
"
나도 그렇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도대체 매일매일 뻔하게 출근하고 뻔하게 월급 받고 어찌 보면 엑셀로 작성해서 주르륵 드래그하면 보일 것 같은 미래에 소위말하는 현자타임이 자주 오는 편인데, 이 구절을 읽으며 나도 참 오만했다 싶었다.
5년은 무슨, 3년 전의 나만 해도 내가 지금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인데 미래가 뻔해 보여 인생이 지루하다니. 어불성설이었다.
힘들어도 매일 돌을 밀어내는 시지프스처럼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인생에 있어 또 어떤 번호가 들어올지 모르니까!
'영화,드라마,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2019) 리뷰 (0) | 2024.08.09 |
---|---|
퍼펙트 데이즈(2023) 리뷰 (0) | 2024.08.04 |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리뷰 (0) | 2024.06.16 |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 후기(스포 X) 상반기 최고의 영화! (0) | 2024.06.01 |
넷플릭스 삼체 줄거리, 소설 원작 결말 (스포) (0) | 2024.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