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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책

애프터썬 after sun (2022) 후기 및 해석 [스포 O]

by 까뮈. 20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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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11살 여자아이 소피와 젊은 나이인 31살 아빠 캘럼이 튀르키예 여행을 간 내용이 전부이다.

다른 일반적인 영화들과 다르게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지지 않고 오히려 부녀가 여행을 간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면 매우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연출 상 독특한 점은 여행 당시 캠코더를 사용해 찍은 장면들이 같이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 내용을 해석해 보자면 캘럼은 현재 이혼한 상태이며 원래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소피가 방학을 맞아 함께 튀르키예로 여행을 간 상황이다.

 

캘럼은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난간에 올라가거나, 밤 바다에 뛰어들거나, 특히 영화 초중반 소피가 하루를 재밌게 놀고 침대에 누운상태로 이를 닦고 있는 캘럼에게 조금 우울하다며 근사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찾아오는 우울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이 때 무언가 속마음을 들킨사람 처럼 캘럼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동공이 흔들린다. 그리고 소피에게 "우리 여기 놀러온거야" 라고 말하며 화난 얼굴로 거울에 입에 있는 치약을 뱉는데 어찌보면 이는 거울 속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연출되며 캘럼의 반응을 통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캘럼은 이러한 우울감을 춤을 추거나, 명상(명상 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또한 캘럼은 길에 버려진 꽁초를 주워 피우는 모습이나 소피와 함께 무전취식을 하고 도망치는 장면을 통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란 것 또한 알 수 있다. 

 

캘럼은 영화 중간 소피에게 자신의 몸을 지키는 법을 알려주는데 이는 자신이 죽어 소피를 지킬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여행 중 캘럼은 생일을 맞게 되는데 아마도 31살 돌아오는 생일을 맞으며 소피와의 마지막 여행을 마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 이외에도 이혼한 전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거나, 소피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남기며 나체로 침대에 앉아 펑펑 우는 모습은 마찬가지로 예정된 죽음을 암시한다.

 

극 중 성인이 된 소피는 동성애인과 아이를 키우고 있다. 과거 캘럼과 같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침대 뒤 회색 벽돌을 보자)

이런 상황에서 성인이 된 소피는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마지막 이별여행이 담긴 캠코더를 다시 보게 된다.

11살의 어린 나이의 소피는 너무 어리기에 어두운 캘럼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피는 아버지 캘럼보다도 이성과의 사랑, 성,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이 더 많은 시절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캘럼과 유사한 상황이 된 지금, 어른이 된 소피는 이제 캘럼이 가졌었던 아픔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나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하겠지만 31살이 된 소피는 여행 내용이 담긴 캠코더, 파편적 기억과 조각난 기억들의 간극을 채우기 위한 상상을 조합하여 31살 캘럼의 아픔을 더듬어본다.

 

영화 내에서 캠코더를 통해 찍은 영상 중 소피가 아버지 캘럼을 인터뷰하는데 "11살 때 아빠는 지금 뭘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라는 질문에 캘럼의 기분이 갑자기 안 좋아지며 캠코더를 꺼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피가 캠코더를 끄지 않자 본인이 꺼버린다. 알고 보니 캘럼의 과거 11살 생일 때 아무도 캘럼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엄마에게 자신이 생일이란 거 말하자 혼났다는 사실을 말한다. 캘럼은 어렸을 때부터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캘럼은 31살에 11살의 소피의 아빠였으니 아마 20살의 매우 젊은 나이에 소피를 낳았을 것이다. 이혼까지 하고 돈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은 캘럼 스스로 춤과 명상을 통해 구원하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캘럼이 세상을 떠난 후 소피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캘럼의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캘럼의 선택을 막지 못한 후회,죄책감.(더군다나 여행 중 캘럼에게 홧김에 노래를 배우게 해 줄 돈도 없는 것을 안다고 한 것은 평생의 후회였을 것이다)

자신을 두고 먼저 떠나버린 캘럼에 대한 원망감.

캘럼을 사랑하는 마음. 

여러 가지 양가감정이 공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점멸하는 어둠 속 클럽에서 허우적대는(어찌 보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31살 캘럼을 31살이 된 성인 소피가 안아주며 과거 마지막 여행에서 춤을 추다 서로를 안는 모습으로 트랜지션 된다.

 

성인이 된 소피 발밑에 깔려있는 카펫은 아마도 31살의 캘럼을 이해하고자 한 소피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아쉬운 점 또한 분명한 영화다.

난 2번 봐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미괄식 구조다. 여러 가지 내용이 주어지긴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으면 그저 단순한 여행내용처럼 보인다.

이는 관객으로서 지루함을 가져온다. 언제 '사건'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을 계속하다 나중엔 포기하고 집중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화를 흘려보내고 결말부를 본다면 "이게 무슨 영화지?, 쟨 뭐 어떻게 된 거라는 거야"라는 말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영화다.

 

아마 관객으로 하여금 마지막 여행에서 캘럼의 어두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소피의 기분을 느끼게 하고싶은 감독의 연출이 아니였을까 싶다. 즉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11살의 소피가 되어 자리를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고 2회차 관람을 하는 순간 관객은 다시 31살의 소피가 된다.

 

또한 옅게 들어간 퀴어요소가 주제의식 또한 희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사춘기를 지나는 소녀의 성적 호기심정도가 아닌 연출상 성인 여성에 대한 동경인 줄 알았으나 성적인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31살 캘럼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는 성인이 된 소피' 서사에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캘럼 역시 동성애자여서 삶에 있어 아픔을 겪었고 그에 따라 이혼한 것이었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인 소피가 성인이 되어 동성애자였었던 아버지 캘럼을 이해하게 되는 서사라면 이해하겠지만..

 

 물론 다른 분들은 오히려 여러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다층적 구조라서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주제와 연출적으로 아주 훌륭한 영화이나 아쉬운 부분도 있는 영화.

예고편, 줄거리조차 안 보고 영화를 보는 나로선 결말을 통한 떡밥 회수 전까지 지루함을 피할 수 없었다. 

영화를 킬링타임이나 재미위주로 보는 사람에겐 재미없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여러번 음미하면서 생각하길 좋아하고 장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보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영화가 될 것 같다.

 

 

 

별점 : [3.5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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